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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발견의 역사 보고서

일서일 2021. 11. 27. 15:07

20c 중반 dna 구조 발견의 역사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지난 1962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과학자들과 같은 연구를 진행했던 다른 과학자 간에 치열한 암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편지가 발견됐다.

 

30일 BBC와 AF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DNA 이중나선 구조에 대한 논문으로 지난 1962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란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가 주고받은 서신을 공개했다. 편지에는 이들과 함께 노벨상을 공동수상한 제임스 왓슨, DNA 구조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도 상을 받지 못했던 여성 과학자 로잘린 프랭클린 등 4명의 인간관계, 연구를 둘러싼 갈등 등이 드러나 있다.

 

편지를 살펴보면 영국 킹스 칼리지 소속의 크릭과 왓슨, 캠브리지 대학 캐번디시 연구소 소속의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연구소 간 경쟁에 따른 긴장감과 연구 업적에 대한 압박 속에 지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윌킨스는 크릭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은 압박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위 다섯 사람은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하는데 공로한 크릭, 왓슨,프랭클린,윌킨스,폴링이다. 이 다섯사람 말고도 그당시 여러 학자들이 생명의 비밀을 독점하려고 경쟁하였다. dna의 비밀을 캐는 순간 그들은 역사에 실리고 명예를 얻고 물론 돈도 얻을테니까.

당시 dna 의 비밀을 캐기 위해 여러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었다.그 중 왓슨과 크릭은 dna연구에서 가장 뒤떨어진다고 평가받던 인물이다. 쟁쟁한 과학자들의 경쟁에 왓슨과 크릭 같은 애송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왓슨은 시카고대학 졸업 3년 만인 1950년에 인디애나 대학에서 동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년밖에 안 된 젊은 청년이고, 크릭은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출신으로 왓슨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학위도 없었고 경력도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자리잡게 되었다.

제임스 왓슨이 출판한 이중나선에는 그들의 경쟁과 심리, 연구들이 담겨있다.

1869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셔가 박테리아에서 DNA라는 물질을 발견했지만, 당시에는 이 물질이 형질 유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1880년대에 독일의 발생학자 바이스만(1834-1914)은 현미경을 통해 요충의 세포가 분열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유전을 결정하는 것이 세포핵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라는 것을 처음 알아냈다. 

1910년 미국의 유전학자 토머스 모건(1866-1945)이 흰색눈을 가진 초파리 돌연변이를 연구해 염색체가 유전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건은 이 공로로 193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모건의 제자인 허먼 멀러(1890-1967)는 1927년 초파리 염색체에 X선을 쬐어 돌연변이를 일으킴으로써 스승의 연구를 뒷받침했다. 그 역시 194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944년 록펠러의학연구소의 오스왈드 에이버리(1877-1955)가 DNA가 유전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1920년대부터 당시 최대의 질병이었던 폐렴을 연구해왔는데, 이를 옮기는 감염성 박테리아(S형)가 비감염성 박테리아(R형)를 변환시켜 감염성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DNA가 관여함을 밝혀낸 것이다. 

 

1994년 무렵 영국의 유기화학자 알렉산더 토드(1907-1997, 1957년 노벨화학상 수상)는 DNA가 인, 염기, 당(디옥시리보)으로 이뤄졌으며, 염기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으로 이뤄졌음을 밝혔다. 

1950년 오스트리아 생화학자인 에르빈 샤가프(1905-)는 각종 DNA 염기를 조사한 결과 아데닌분자의 수는 티민분자의 수와 같고, 구아닌분자의 수는 시토신분자의 수와 같음을 알아냈다. 이 사실은 아데닌과 티민이, 구아닌과 시토신이 짝을 이룸을 뜻한다. 

1952년 롱아일랜드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앨프리드 허시(1908-1997, 196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가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파지(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에 감염될 때 핵산인 DNA만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핵산인 DNA가 유전물질임을 입증한 것이다. 

당시 DNA 연구의 선구자인 뉴질랜드 출신의 모리스 윌킨스는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서 바이러스와 핵산을 연구했다. 여성 물리화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과 함게 X선 사진을 찍어 DNA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다. 거의 혼자 연구하는 플랭클린은 자신의 X-선 회절 사진 결과로 축축한 DNA(높은 습도에 노출되어)가 α-Helix 구조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모든 DNA가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다른 마른 DNA 형태에서도 이를 확인한 후 발표하려고 미루고 있었다. 윌킨스는 좌절 상태가 되었고 1953년 왓슨에게 플랭클린의 연구 결과를 그녀에게 말도 없이, 동의도 없이 보여줬다.

1953년 4월 25일, 제임스 왓슨(1928-)과 프란시스 크릭(1916-)이 DNA X선 사진을 분석해 구조를 설명한 1쪽짜리 짧은 논문을 완성해 영국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실었다. 왓슨과 크릭, 그리고 윌킨스는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공로로 196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왓슨과 크릭의 경쟁자였던 라이너스 폴링(1901-1994)은 당시 이온구조화학 분야에서 1인자였다.양자이론을 화학에 적용시켜 오비탈이론을 세웠으며, 1950년에는 단백질의 나선구조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DNA 구조가 나선모양일 것이라는 확신 속에 상당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1952년 프랭클린의 X선회절사진이 공개된 학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사회주의자이자 반핵주의자였던 폴링이 영국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1953년 DNA가 3중나선구조라는 잘못된 논문을 쓰고 말았다. 하지만 폴링은 1954년 분자구조와 화학결합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1962년 반전(反戰)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53년 4월 25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20세기 생명과학계의 최대 사건인 DNA 이중나선의 구조도가 실린 날이다. 이중나선 구조 발견의 주인공은 미국의 제임스 왓슨(James Dewey Watson, 1928~)과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2004)이다. 본문은 1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었지만, 20세기 최대 생물학적 성과로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유전학 연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생체 안에서 보통 이중나선을 이루고 있다. 나선의 등뼈는 인산과 당이고, 나선 안쪽으로 4가지 염기(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가 달려 있다. 이 염기의 순서가 바로 생명체의 유전 정보다. 한쪽 가닥에 달린 염기가 다른 쪽 가닥에서 나온 염기와 수소결합을 통해 손을 잡듯 결합한다. 이것이 염기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