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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슈뢰딩거와 고양이에 대한 모든 것들

일서일 2021. 11. 30. 15:10

<Austria 1,000 Schilling [1983]>

 

앞)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 1887~1961 )

 

뛰)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 )가 오랫 동안 재직하였던 빈 대학교( Universitat Wien / University of Vienna )의 모습

액면:1,000 Schilling

크기:152 x 72

 

 

1000 오스트리안 shilling(1983, 오스트리아) 이름 :  에르빈 슈뢰딩거 (본명 : Erwin Schrodinger) 

출생 :  1887년 8월 12일 

사망 :  1961년 1월 4일 

출생지 :  오스트리아 

경력 :  1921년 브레슬라우대학교 교수

1926년 파동역학 연구

1940년 더블린아카데미 교수 

수상 :  1933년 노벨물리학상 

특이사항 :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도서 :  생명이란 무엇인가 

기타 작품 :  저서 '나의 세계관 (Meine weltansicht) 

 

1906년 빈대학교에 입학했고 잠깐씩 떠나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1920년까지 그곳에 계속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군대에 복무했으며 그뒤 1921년 취리히로 가 그곳에서 6년을 보냈다. 취리히에서 이론물리학자로서 창조적 업적을 내기에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39세 되던 1926년의 6개월 동안 양자파동역학의 기초를 세우는 논문들을 썼다.

L. V. 드브로이가 전자(電子)도 파동성을 나타낸다는 물질파의 발상을 발표한 것은 23년인데, 슈뢰딩거는 이 발상에서 새로운 원자구조론 건설의 힌트를 발견했다.

N. 보어의 원자구조론은 당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론으로 생각되었으나 거기에 나타나는 양자조건, 즉 그 정수성이 슈뢰딩거로서는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는 이 정수성과 현)의 진동 때 나타나는 정수성을 관련시켜 전재원자핵의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파동성을 해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며, 이런 생각을 일반화하면 양자화에 대한 사고의 본질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파동역학의 발상이었다.

 

<해밀턴-야코비 방정식>

 

그는 고전역학의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에서 출발하여 변분) 문제를 풀고 에너지를 나타내는 매개변수를 포함하는 편미분방정식을 얻었다

 

<편미분 방정식>

 

이것을 수소원자에 응용한 결과 에너지가 취하는 값은 보어 이론의 것과 일치했다.

이로써 기초방정식으로서의 슈뢰딩거 방정식이 확립되고(1926) 그 후 파동 역학을 정력적으로 전개했다.

당시 W. K. 하이젠베르크 등에 의한 행렬역학이 있었으나 조화진동자)·섭동론·슈타르크 효과 등에 관한 파동역학의 계산 결과는 행렬역학의 것과 대부분 일치했다.

생각하는 방법이나 이론의 형식이 다른 두 가지 역학이 같은 결과를 보인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에서 행렬역학을 이끌어 내려 시도하여 양자가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성공했고(1926), 이 증명은 얼마 후 완전해져 양자를 통합한 양자역학이 성립되었다.

논문에서 그는 행성천문학에서의 뉴턴의 운동방정식과 같이 양자역학에서 기본적인 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의 역학에 대한 편미분 방정식을 기술했다. 1926년 1월 슈뢰딩거는 그의 파동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Annalen der Physik"에 발표했다.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은 원자나 전자 같은 미시 세계의 운동을 기술한 방정식으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함수처럼 전자나 행렬 대수를 이용하지않고 드 브로이의 물질 파를 중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이나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이나 결과는 같다. 과학자들은 어려운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보다는 일반 파와 비슷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선호했다. 슈뢰딩거는 양자 물리학 완성에 기여한 공로로 1933년 노벨상 수상하였다.

 

슈뢰딩거는 그 세대의 모든 물리학자들 가운데에서도 뛰어나고 다재다능했다. 그는 서양의 언어들로 된 모든 문학과 철학에 능통했고, 그가 어릴 때 배웠던 영어로 쓴 그의 대중과학 저술들은 그런 종류들 가운데 최고였다. 그의 〈자연과 그리스인 Nature and the Greeks〉(1954)에 요약된 고대 그리스 과학과 철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는 그리스인들이 만들어낸 과학적 세계관에 감탄했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신비를 밝혀주는 유일한 도구로서 과학이 적합한지에 대해 의심했다. 그 자신의 형이상학적 입장은 마지막 책 〈나의 세계관 Meine Weltansicht〉(1961)에 표현된 것처럼 베단타의 신비주의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특출한 재능 덕분에 그는 일생을 통해 과학과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고, 이는 이런 학문분야들의 전체 흐름이 점차 기술적으로 전문화되던 시기에 거의 독보적인 업적이었다. 

  슈뢰딩거는 '전자는 입자성뿐만 아니라 파동성도 갖는다'라는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에 영향을 받아

전자를 파동으로 다룰 방법을 고안하다가 파동방정식을 구할 수 있는 슈뢰딩거 방정식을제안했다. 그러나 슈뢰딩거가 제안한 이 파동방정식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견이 있었다.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인 파동방정식을 전가가 갖는 파동의 실제 모습이라고해석했다. 

그러나 보른(Born)은 달랐다. 보른은 파동방정식을 확률이라고 해석했다. 슈뢰딩거 방정식 HΨ=EΨ에서

파동방정식은 전자가 에너지 E값을 가질 확률이라고 생각했다. 

보른의 확률적 해석이 여러 가지 실험결과와 일치했지만

슈뢰딩거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에 반박하기 위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이 탄생하게 된 거다.